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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컬처리뷰

광복절에 가볼 만한 전시,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느 해보다 큰 전기를 맞이했다. 1866년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키고 당시 약탈해간 외규장각의 도서가 지난 5월 27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1975년 박병선 박사가 처음 국내에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알린 후, 올해 반환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숨은 공신이 있었다.

단순한 책 이상의 의미, 조선의 모든 것을 보여주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이미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기록 문화의 꽃이다. 이번에 돌려받은 외규장각 의궤의 특징은 대부분 어람용(임금이 보기 위해 제작된 것)이며, 제작 당시의 원표 지본이 있고, 유일본 30책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궤가 기록한 행사의 내용은 왕실 혼례식, 장례식, 책봉의식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특히 어람용과 국내외에 한 점밖에 없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돼 앞으로 의궤 연구 및 활용에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의궤는 ‘의식 궤범’의 줄임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이다. 왕실과 국가에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준비에서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의궤는 그림과 글로 유교국가 조선의 사회 기틀을 마련하고 알리기 위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잘 기록된 그림과 글은 조선시대 의식과 궤범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의궤의 그림은 기록화로서 왕이 행차할 때 그것을 진행하는 이들, 구경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 배경까지 면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당시의 광경을 화폭에 옮겨 놓은 것이니 그때의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조선왕조 내내 꾸준히 제작된 의궤는 예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상징화로서도 의미가 있다. 즉, 조선의 통치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게 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기록물이다. 의궤에는 행사의 진행 일정, 담당 관원의 명단, 행사 시행 원칙, 행사를 위해 제작된 기물, 여기에 사용된 물품의 종류와 양, 차출된 장인 명단과 임금, 행사가 끝난 뒤 의궤 제작을 담당한 사람들과 소요된 물품, 포상 내역 등 행사 전반에 걸친 정보가 다양하고 꼼꼼하게 담겨 있어 조선의 속내를 볼 수 있다. 

조선왕조의 의궤는 특히 숙종, 영조, 정조 3대에 걸쳐 양적, 질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각종 의전의 법도를 위한 의궤가 다수 제작된 것은 왕실의 질서를 확실히 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붕당 세력의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으로 손상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위엄을 갖추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의궤는 왕실의 사치가 아닌
백성을 보호하고 왕정을 바로잡기 위해 편찬되었다.”
“소민 보호를 위해 왕권 강화가 이뤄지던 시기에
의궤 제작이 발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정조는 영조의 개혁 정치를 이어나가고 조정의 믿을 만한 문무관들이 지속적으로 왕을 보필할 수 있도록 규장각을 세웠다. 이들에게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등의 관직을 겸하게 해 왕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권력이 문벌 세력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또 정조는 새로 지은 서책 가운데 귀중한 것을 국방 안전 지대인 강화부에 따로 보관하기 위해 궁 안에 ‘외규장각’을 지었다. 

박물관에서 되살아난 조선의 속내

외규장각 의궤의 전시는 총 6부로 구성된다. 체계적으로 다양한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부분이 많다. 1부에서는 의궤의 개념과 구성을 설명하고, 2부에서는 왕권과 통치를 주제로 의궤 속에 깃든 조선시대 통치 이념의 면모를 조명한다. 3부의 주제는 ‘나라의 경사’로서 왕실의 혼례, 책봉, 존호 등에 관한 의식을 기록한 의궤를 다룬다. 4부의 주제는 ‘왕실의 장례’이다. 왕실 의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죽음과 관련된 의식이었다. 5부 ‘추모와 기억’은 선왕의 기억을 되살리고 추모하는 방식을, 마지막 6부에서는 1866년 병인양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과정을 보여준다.

의궤를 전시하는 것이 물론 이 전시의 주 목적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은 영상과 인형을 이용해 좀더 쉽게 관람객이 의궤에 빠져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우선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식 행렬의 모습을 3D로 재현했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식을 담은 의궤에는 무려 379필의 말과 1299명의 인물이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자세하게 표현된 의궤 덕분에 영상으로 표현하기가 더욱 쉬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의 행렬을 스크린을 통해 마주한다는 것. 어린이는 역사의 의미를, 어른은 새로운 지식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인형 역시 의궤에 표현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특히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 아직도 95%

7월 19일에 열린 외규장각 의궤 개막전에서는 정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적극적인 의지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연설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계기로 외국에 존재하는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는 전담 팀을 신설했다.

우리 문화재의 해외 반출은 대부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친 근현대에 강국들이 불법으로 가져간 것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일본, 미국 등 20개국으로 약 76000점이 유출되었으며, 그 중에는 국보급, 보물급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다. 국가별로는 일본이 45%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미국, 유럽, 중국 순이며 심지어 바티칸에도 500여 점이 있다. 현재까지 환수된 것은 약 5%에 불과하다. 

해당 국가 법률에 따르면 이 불법 유출된 문화재가 그들의 소유이기 때문에 반환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장시간에 걸친 연구, 조사가 필요하고 민간의 도움도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의 외규장각 의궤 반환은 모범적인 사례로 앞으로 진행될 환수 과정에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외규장각 의궤에 담긴 내용은 생각보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조선 시대 궁궐에서 혹은 관련되어서 일어난 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일 뿐이다. 하지만 그 기록이 21C 현실에서는 영상으로 되살아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가 또 다른 빼앗긴 문화의 산물과 정신을 환수하여 후대에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더욱이 외규장각 의궤는 완전한 반환된 것이 아니라 5년마다 대여하는 것이다. 많은 관심과 힘을 기울여 우리 것을 되찾았으면 한다. 개인의 물건을 소중히 하듯, 우리 민족의 문화와 얼이 담긴 문화재야말로 우리가 진정 소중히 지켜내야 할 것이 아닐까. 박병선 박사 개인이 시작한 일이 결국 반환으로 이어졌듯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의지가 더 좋은 결실을 맺는 기틀이 될 것이다.

'문화재 환수는 정부가 할 일'이라며 뒷짐지기보다 한 번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둘러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일제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광복절이 곧 다가온다.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며 박물관을 둘러보면 어떨까. 외규장각을 미리 공부하고 오면 문화재와 더욱 잘 소통할 수 있겠다. 그런 작은 행동으로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느껴보고, 환수해야 할 다른 문화재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을 듯하다. 

“한장 한장 내 손때가 묻은 그 책들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니 너무 기쁘다.
하지만 내가 책이라면
울면서 한국으로 갈 것 같다"
- 박병선 박사(2011.4)

 

 

국립중앙박물관 가는 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7월 19일부터 9월 18일까지 특별전이 진행되며, 반환된 외규장각 도서 297권 중 의궤 71점을 비롯해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의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의궤, 국립고궁박물관 공예품을 포함해 총 165점이 전시된다.

다양한 의궤 관련 서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는 전시 설명이 있는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이다. 더 심도 깊은 설명을 듣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직접 들려주는 수요일 밤의 프로그램 ‘큐레이터와의 대화’도 준비되어 있다.

*관람 시간
화, 목, 금 : 오전 9시 - 오후 6시
수, 토      : 오전 9시 - 오후 9시
일(공휴일): 오전 9시 - 오후 7시
매주 (월) 휴관. 입장은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
*관람료 : 무료 
*전시 설명 : (화)~(금) 오전 10, 11시 오후 2, 3시 / (토) 오전 10시, 11시
*큐레이터와의 대화 : 8.17(수) / 8.31(수) / 9.14(수) 오후 6시 30분 기획전시실
 

대학생기자 민준홍 /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세상은 승자만 기억한다."

하지만 승자뿐 아니라 세상을 진실되게 기억하게 만들 수 있는
노력하는 기록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