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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컬처리뷰

외규장각 의궤, 145년 만의 귀향이 아쉬워

내가 아는 바 사람들 사는 일에 가장 관심과 애정이 깊은 친구를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남들 사는 일에 무심한 나를 종종 불러, '네가 사는 곳이 이런 곳이다'라는 걸 알려주는 친구다. 특별 전시관엔 남녀노소, 개인 단체 할 것 없이 사람이 많았다. 오전 10시와 11시에 두번 진행 하는 도슨트 해설을 잠을 못 이겨 놓치고 가장 사람이 붐비는 3시에 간 탓이니 어쩔 수 없다.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의궤란 조선 시대 왕실에서 큰 행사를 할 때, 후세에 참고하도록 하기 위해 의전의 법도(절차, 인원, 전말과 경과 등)를 상세히 기록해 놓은 책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세계 최고의 기록 문화 유산으로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 체계도와 섬세함으로 인해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에 이은 조선시대 기록 유산의 정수로 뽑힌다. 의궤의 형태는 각각 팔도 각지 다섯 개 사고(史庫)에 보관하는 '분상용'과, 임금님이 보는 '어람용'이 있다. 어람용은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이 약탈했다. 그렇게 사라진 줄 알았던 의궤의 존재를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 박사가 발견했고, 프랑스와의 36년 간의 협상 끝에 돌아오게 됐다.
 

 의궤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은 각자 다르다. 혹자는 왕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사치로 여겼고, 혹자는 왕이 서민을 직접 만나는 탕평 정치의 지향점을 보았다고 평한다. 역사는 해석 나름이겠지만, 내가 본 것은 이 기록 유산으로 인해 몇 백 년이 지난 후세에도 과거 모습을 살아 움직이는 듯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왕실 행렬 그림을 보고 만들어진 행렬 재연 영상과, 책의 내용을 보고 불타 없어진 외규장각 내부 모습과 물건들을 재현한 영상을 보며, 의궤의 시간을 뛰어넘는 뛰어난 복원성을 실감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지워지고 잊혀지는 것이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컴퓨터의 탄생 이후 '복원하기'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 일'이 됐다. 이제 많은 것 DB화 되어 지워지지 않는데, 그것을 
보존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진정 보존해야 할 가치는 온전하게 전달되고 있을까? 
 
다시 찾은 우리 문화 유산의 자부심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 '의궤의 반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번에 프랑스와 맺은 협약은 5년 단위의 대여 방식이다. 그나마도 이전 반환 협상에서는 국내 고문서와 등가교환 방식으로 바꾸려던 것을 '대여'하게 된 것이라고 하니, 아찔하다.

워낙 다양한 국가의 보물을 보유한 프랑스인지라 '의궤'를 쉽게 내어줄 수 없는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격한 욕심보다 더 욕심내야 하는 것이 응당 주인의 몫이 아닐까? 임금이 직접 '만세萬世에 걸쳐 행해지도록' 관심과 투자를 들인 문화 유산이 145년 만에 돌아온 길은 화려하지만, 이산가족 상봉마냥 짧은 순간이 아쉽게 느껴진다.

사족을 붙이자면 또 다른 우리 문화재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직지심체요절 역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이 또한 박병선 박사가 발견해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임을 밝혀냈다. 하지만 의궤와 달리 훔쳐간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정식으로 사 갔다. 돌아올 날이 요원한 이유다. Ahn 

사내기자 이하늬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