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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서평

정신병은 의학자와 제약회사가 만들어낸다?

서평 - 만들어진 우울증(2009. 한겨레출판)


작년 초 MBC '무한도전'은 정신분석 특집 편을 방영했다. 이날 무한도전 멤버들은 각자의 지능과 장애를 검사했다. 평소 산만하고 시끄러운 노홍철이 의사에게 집중력 장애를 진단받자 정형돈은 바로 "ADHD!"라고 말했다. TV를 보던 나 역시 ADHD가 무슨 병인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어느새
ADHD라는 어려운 용어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주의가 산만한 아이를 가진 어머니들은 요즘 아이의 손을 잡고 정신과를 찾기도 한다. 예전엔 모르고 지나친 병을 알 수 있어 다행일까? 우리는 정말로 아픈 것일까?


<출처: 다음 책>

'만들어진 우울증-수줍음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2009. 한겨레출판)은 다른 일상적인 감정보다 특히 수줍음이 병이 되는 것에 주목한다.
그렇다. 우울증이 아니고 수줍음이다.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제목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책 제목만 보면 문자 그대로 우울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샅샅이 파헤치는 책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우울증에 관한 책이 아니고, 이 책의 원제인 Shyness(수줍음)에 관한 책이다. Shyness와 만들어진 우울증 사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생 인류의 간격만큼이나 멀어 보인다. 물론 ‘수줍음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라는 부제를 진화의 증거로 남겨놓았지만 말이다.

 

제목은 책에 있는 수많은 글자 중에 단 몇 글자이므로 분량 면에선 겉절이일지도 모르지만, 책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는 쩌리짱이다. 자살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우울증이 화두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때문에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만들어진 우울증'이란 제목이 채택된 것 같다. '만들어진 우울증'은 만들어진 책 제목이니 우울증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이 책의 제목은 오히려 책의 부제인 ‘수줍음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가 더 잘 어울린다.

책에 따르면 수줍음이 병이 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이하 DSM)이다. DSM은 정신장애를 진단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매뉴얼이다. 이 매뉴얼은 개정될 때마다 수백 개의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겨우 몇 년 사이에 일반인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정신장애의 종류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한 셈이다.

 

이 책은 DSM을 개정할 때 근거가 된 논문들의 빈약한 데이터를 문제 삼는다. 또한 DSM 업데이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스피처 박사와 그 주변인들을 살펴봄으로써 DSM이 과학적인 근거보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더 집중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힌다. 저자는 이 모든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논문, 인터뷰 그리고 정신의학자들 사이에 오간 편지 등 수많은 자료를 이용했다.

수줍음이 병이 되게 하는 공사의 첫 삽을 뜬 사람이 스피처 박사라면 아스팔트를 깔고 원하는 대로 길을 낸 것은 제약 회사였다. 제약 회사들은 약을 팔기 전에 질병을 먼저 팔았다. 그들은 먼저 일상적인 감정이 사실은 질병이라고 대중에게 선전했다. 그다음 그들은 돈을 받고 일명 행복을 주는 알약을 사람들 손에 쥐어주었다. 이제 사람들은 부작용과 약물중독이라는 진짜 질병을 얻기 시작했다.

책에 실린 광고 속 사람들은 죄다 행복하게 웃으며 "이 약 때문에 삶이 이토록 행복하게 바뀌었다."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가끔 심각한 표정의 사람도 있다. 대신 그 사진 위에는 ‘당신에게 사람 알레르기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같은 자극적인 카피가 새겨져 있다. 책에는 이처럼 제약 회사의 마케팅에 사용된 광고 자료들이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광고를 따라가다 보면 이 광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왜 이런 식으로 변해갔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또 제약 회사에 고용된 마케터들이 어떤 식으로 대중에게 사기를 치는지 보고 있으면 재미있기도 하지만,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하기도 하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2008. 문학동네)에서 베로니카는 자살 시도 때문에 정신 병원에 들어간다. 그녀는 미친 사람들과 생활하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고민한다. 정신의학자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정신질환자로 가득 찬 정신병원에 사는 셈이다. 그럼 우리는 어느 정도의 수줍음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로 정해야 하는가. 그것을 정할 사람은 지구에서 단 한 사람이다. 스피처 박사도 제약 회사도 아닌 바로 당신이다. 스스로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면 남들이 돌+I라 불러도 정상이다.

나도 괜찮고 당신도 괜찮다. 그대 스스로를 진찰하라. Ahn

대학생기자 김준일 / 국민대학교 신소재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