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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명사 인터뷰

멘토스 사장님! 아이디어 디렉터 안다비 씨를 꼭 만나주세요!

호기심이란 무엇일까요?

각자의 색깔이 다른 20대들이 한 회사 앞에서는 모두가 같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자격증, 영어점수 및 학벌을 많이 보는 요즘 세상에서 호기심이란 중요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자기만의 why를 물어가며 새싹을 달기 시작한 아직까지도 호기심이 가득한 그녀, 그녀는 풀리지 않는 why를 노트에 빼곡히 적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여 마침내 그녀만의 새로운 why를 만들어 '왜'라는 호기심에 새싹을 달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저는 아이디어 디렉터 안다비 씨를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사진 촬영: 김 보미   사진 촬영: 김 보미

                                      

Q) 전시회를 열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저는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었지만  저의 그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그림을 더 그릴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분들 때문에 다시 한 번 전시를 열어서 한 사람이라도, 내 또래 친구들이라도 그런 변화의 계기가 된다면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유가 있지 않았고 무료로 대관해 주는 곳을 찾다가 '바로 그림'이라는 곳을 찾아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Q) 전시회를 열다보면 많은 힘든 점이나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전공이 디자인학과가 아닌 안다비 씨는 스트레스 받거나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었나요?

'바로 그림'이라는 좋은 곳을 찾아 미팅을 했어요. 최대 2주를 빌릴 수 있지만제 할 거냐는 질문에 제가 망설였어요. 왜냐하면 저는 첫 전시회 때 그림을 다 드려서 그림이 없었어요." 당장 언제 하실래요? "라는 말에 112일부터 15일까지 빌렸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다시 그려보기로 했고 일단은 기회가 보이니까 잡았어요. 그래서 2주를 빌리고 개인전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집에서 why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저희 할아버지가 농사를 하시는 분인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시다가 엉덩이뼈가 다 깨졌어요. 병간호를 할 사람이 없었어요.  제가 밖에서는 프리랜서다 아이디어 디렉터라고 해도 저희 할머니 눈에는 컴퓨터로 알 수 없는 것만 하는 백수였어요. 저희 할머니께서 "다비야,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고 저도 그랬어요. 저는 누가 일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결국 할아버지 병간호를 한 달 동안 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저도  그림을 그려야 했고, 저도 시간이 없었고, 생각해야 했는데 날마다 병간호를 해야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날마다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들고 병원에 갔어요. 이 그림, 저 그림 다 그려놨는데 만족스럽지가 않은 거예요. 제가 첫 전시회 때는 그냥 why 만 그렸는데  두 번째 전시를 하니까 제가 욕심을 내고 있었던 거예요. 뭔가 '더 잘해야지, 그럴 듯하게 해야지' 하면서 제가 전시 코앞까지 스트레스가 정말 잔뜩 받아 있었어요. '너무 촌스러워! 너무 유치해!'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근데 제 남자친구가 제 머리를 망치로 뻥친 것 같았어요. "다비야, 이 일은 누가 시킨 일이 아니야, 근데 왜 누가 시킨 것처럼 하고 있어?"라는 거예요.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누가 시킨 게 아니었어요. 저는 메시지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그림의 완성도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똑같은 그림이었는데 갑자기 멋있어 보였어요. 이 정도면 되겠다 하고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Q) 총 전시회를 2번 열었는데, 혹시 전시회를 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작은 강연 같은 전시회를 열었어요. 어떤 분이 "저 이 그림 사고 싶어요"라는 말을 했어요. 말도 안 되었고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니고 그림 팔 생각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드렸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다른 분이  "저는 그림 세 개를 갖고 싶은데요. 하나는 그냥 주시고 두 개는 제가 사면 안될까요? 제 동생 중이 선생님이 있어요. 근데 그 동생에게 이 그림을 설명해주면서 제발 너 학교 학생이 왜요? 했을 때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고 좀 들어줘라하면서 그림을 선물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 가격이 없다고 하며 말했어요.  "제가 지금은 그냥 드리지만 어마어마하게 비싸질지도 몰라요. 근데 지금은 가격이 없으니까 원하시는 가격을 넣어주세요"라고 했어요. 근데 그 분이 "저도 백수라서 돈을 못 벌고 있어요. 제가 성의껏 넣어드릴게요." 해서 그분이 2만 원을 넣어주셨어요. 제가 처음으로 돈을 번 순간이었어요!

 

    사진 촬영: 김 보미

Q) 아이디어 디렉터가 원래 있는 직업인지 아니면 안다비씨가 따로 안다비씨를 지칭 말인지 궁금해요. 아이디어 디렉터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이디어 디렉터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파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게 파티 플래너고, 디자인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는 게 디자이너예요. 광고에 아이디어를 내는 게 광고 기획자에요. 근데 저는 파티 면 파티, 디자인이면 디자인, 광고면 광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싶었어요. ? 나는 손재주와 아이디어로 감동을 주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왜 꼭 파티, 광고, 디자인 한 가지만 정해야 돼? 난 모든 곳에 아이디어를 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저는 아이디어 디렉터라는 말을 제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어요.

 

   사진 촬영: 김 보미

Q) 인터뷰하기 전에 제가 안다비씨가 만든 멘토스 영상을 보고 왔는데요. 혹시 멘토스 그림이나 영상에 대해 숨겨진 의미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아이디어 디렉터가 되고 첫 번째로 한 일은 UCC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제 맘대로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싶은 곳에 아이디어를 내고 있어요. 근데 아이들에게, 내 친구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전문대 2년제 나와서 너희들보다 2년 먼저 나온 사회는 너희들이 말했던 스펙만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꼭 멘토스 같았어요! 한 어른은 자기가 살아보니 우연히 딸기 맛 멘토스만 느낄 수 있었던 거예요. 두 번째 어른은 살아봤는데 레몬 맛 밖에 못 먹어 본 거예요. 세 번째 어른은 딸기 맛도 맛보고 레몬 맛도 맛본 거예요. 멘토스 껍질이 안 벗겨져 있는 것이 사회 초년생들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것은 딸기 맛은 꿈과 열정, 레몬 맛은 스펙을 의미해요. 근데 사회 초년생들이 물어봐요. "저는 딸기 맛을 먹고 싶어요. 딸기 맛 먹을 수 있을까요?" 딸기 맛만 먹은 어른은 "당연하지 너는 달콤한 딸기 맛을 먹을 수 있어!"라고 얘기해요. 근데 레못 맛만 먹은 어른은 "내가 지금 살아오면서 내가 맛봤던 맛은 레못 맛인데 무슨 소리야! 꿈 깨!"라고 말해요. 세 번째 어른은 "딸기 맛을 먹을 순 있는데 네가 레몬 맛을 먹기 싫다고 먹지 않으면 딸기 맛도 먹을 수 없어"라고 얘기해요. 제가 2년 먼저 나와서 사회에서 만났던 어른은 세 분류의 어른들이었어요. 아무리 유명하고, 성공하고, 멋있는 사람을 만나도 이 세 가지 어른들이 공존했어요. 내가 느낀 사회는 세 어른이 살고 있는 사회인데 그때 당시 고등학교 안에서만 느낀 사회는 레몬 맛 어른들만 살아가는 사회였어요. 사회라는 곳은 무섭고 두려워야 할 곳이 아니라 무언가 설레야 하는 곳 이예요. 사회는 시큼함 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콤달콤한 맛이 있는 곳 이예요. 그걸 전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멘토스를 이용해서 광고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Q) 네덜란드에서 다음 전시가 연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미국도 있고 다른 유럽나라도 있는데 꼭 네덜란드에 가서 전시를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멘토스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봤는데 네덜란드에 있었어요.  멘토스 사장을 만나러 가려고 했지만 회사를 찾아보니 본사가 네덜란드에 있는 거예요. 근데 이 회사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가 합병한 회사로 회사 안에 대표 브랜드 츄파춥스와 멘토스가 있어요. 사장님을 만나서 광고를 만들려고 했는데 저는 해외여행을 나가본 적이 없었어요.  비행기 차표가 200이 넘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죠. 근데 멘토스를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려 광고를 만든 거였어요. 그런데 이 영상을 더 많은 학생들, 아이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것을 느꼈고 멘토스 사장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방법을 생각했어요. 결국 단기 알바를 뛰어 90만 원에 티켓을 구입했는데 티켓의 조건이 저렴하게 주는 대신 네덜란드에 1주일을 머물러야 하는 거였어요. 저는 멘토스 사장만 만나면 되는 거였어요. '그럼 1주일 동안 네덜란드에서 뭐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대표 꽃이 튤립이잖아요. 제가 그린 그림이 튤립이 닮았어요. 그때 제가 '아! 네덜란드에 가서 말은 안 통하지만 이 튤립을 보여주면서 호기심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네덜란드에 가서 길거리 전시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Q) 멘토스 사장이 네덜란드에 있어서 가기로 결정하였는데요. 혹시 멘토스 사장이랑 연락이 된 건가요?

네덜란드는 처음이어서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인과 연락을 해봤습니다.  메시지로 제가 설명과 함께 포스팅을 하였는데 충격적인 댓글이 달렸어요! " 멘토스 사장 네덜란드에 안 살아요. 이탈리아에 있어요!. "  취소를 하기엔 너무 늦었고 저는 네덜란드라는 나라를 너무 사랑하고 있었고 꼭 가고 싶었어요. 멘토스라는 것 때문에 내가 네덜란드행을 결심했지만 저 꽃을 보여주고 네덜란드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직원들이라도 보여드리기 위해 네덜란드행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Q) 멘토스 사장이랑 이메일이나 편지로 연락하는 법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방법으로 연락을 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제가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멘토스에 대해 가장 애착을 가지는 사람은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었어요. 그런데 전 분명히 직원한테 보내게 되는 거였어요. 그럼 직원들은 "? 이게 뭐야, 무슨 말이야. 안될 것 같네요."하고 잘라버릴 것 같았어요. 근데 제 스타일을 봤을 때 답장을 받았을 때 "아 안 될 것 같네요, 못 만날 것 같네요. 열심히 사세요."라는 메시지가 오면 너무 풀이 죽을 것 같은 거예요. 너무 의욕이 꺾일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다이렉트로 사장님한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출발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약속은 잡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진 촬영: 김 보미

Q) 요즘 호기심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취업, 공부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제가 항상 학교를 가면 질문하는 질문이 있어요! "여러분 사회는 어떤 느낌인가요?" 열이면 열 학생들이 "무서워요, 걱정돼요, 두려워요.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 이런 말을 해요.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사회라는 곳은 설레는 곳이니까요.  저는 사회 초년생들이 멘토스의 레몬 맛과 딸기 맛 둘 다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호기심을 잃고 살아가고 요즘 공부, 취업에만 몰두하는 현대인들에게 안다비 씨의 그림이 많은 아이들,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사회란 설렘을 주는 곳으로 새콤달콤한 맛을 모두가 맛봤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뜻깊은 말씀을 전해주신 아이디어 디렉터 안 다비 씨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글/ 대학생 기자 김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