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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김미경이어서 먹히는 언니의 독설

tvn스타특강쇼 역대 시청률1,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 진행자, 명강사

이것은 모두 김미경이 가지고 있는 수식어들이다.

어느날, 이웃집 아주머니같은 모습으로 tv에서 강연을 했던 그녀가 이제는 더욱더 멋진 방송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도 자신의 꿈을 좇아서 일한다는 드림워커 그녀, 김미경이 들려주는 그녀의 인생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의 멋진 커리어우먼 김미경의 고향은 충북괴산, 작은 시골마을의 욕심많은 똑순이 여자아이였다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대한 그녀의 의지는 굳건하였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서울로 상경을 꾀한다. 그녀는 음악을 좋아하였고, 공부보다는 음악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음대로 진학하기를 결심하였고, 열심히 노력하여 연세대 음대에 입학하였다.

늘 동경의 대상이었던 서울, 그녀가 그렇게 꿈꾸던 서울이었지만 막상 그녀의 서울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비싼 등록금과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용돈, 하지만 그녀가 고집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녀의 첫 아르바이트는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하루종일 서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일이 아니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지 한달쯤 지났을까, 그녀는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있잖아!”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의 전공은 음악이고, 그녀는 그 음악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었음을. 그리고는 피아노레슨을 시작한다. 수입은 꽤 짭짤했고, 그 돈을 모아 등록금과 용돈에 보탤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그녀는 졸업하였고, 한 광고회사의 cm송을 제작하는 부서에 취직하게 되었다. 음악을 좋아했고, 그래서 음악을 전공한 그녀였지만, 자신이 속한 부서에서 자신의 역량을 뽐내지는 못하였다. 결정적으로, 한 가수와의 cm송 제작과정에서 그녀는 큰 자괴감에 빠진다.

음악은 정말 이런 사람이 하는구나, 나 같은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음악을 하더라도 이런사람의 발톱만큼도 못 따라가겠다.”

그녀는 과감하게 광고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작은 피아노학원을 차린다.

그 일이 그녀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 특유의 꼼꼼함과 섬세함으로 원생 한명한명을 진심으로 대하였고, 입소문을 통해 원생 수는 늘고 또 늘었다.

성공적인 학원운영이 계속되던 어느날, 그녀에게 한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피아노학원이 잘 운영되고 있는데 그 비결을 다른사람들과 공유해보면 어떨까요?”

지금은 스타명강사가 된 그녀의 비공식적 첫 강연이었다. 그렇게 한번, 두 번 강연을 하다 그녀는 강연에서 자신을 발견하였다. 강연이 재밌어지고, 이것을 내 일로 삼아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피아노학원과 강연을 병행하다, 피아노학원을 접고 강연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성공한 누구에게나 그렇듯, 시행착오란 존재하는 법이다. 강사라는 타이틀을 내건 그녀의 공식적인 첫 번째 강의는 그녀에게 망신과 수치만을 안겨준 채 끝이 났다. 무대와 청중이 무서워진 그녀에게는 내공을 쌓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얼마의 시간 후,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함으로 그녀는 당당하게 청중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냉담한 반응이었던 청중들도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스피치학원의 원장의 자리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었고, 우연한 기회로 tvn스타특강쇼의 자리에도 서게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청중뿐만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녀의 특강 다시보기 수는 넘쳐났고,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요청의 글이 쇄도하였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녀만의 직설적 언어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였다. 스타특강쇼의 특성상 청중의 대부분이 20대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20대 이야기, 청춘들의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그녀가 대학생때 겪었던 경험들, 그로인해 배운 것들, 결혼한 후 느끼고 배운 것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가감없이 전달한 것이다.

하루 1시간씩 생각하기’‘남자들의 아부를 욕하지말고 오히려 배우자’‘말은 잘하는 것 보다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하루를 절대로 헛되이 보내지 말자등등...

누구든 충분히 다 알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녀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시청자가 공감하고, 다시한번 새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성원으로 스타특강쇼 김미경편이라는 타이틀로 3번이나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녀의 강의를 너무나 재밌게 보았던 시청자들은, 얼마 후 다시 티비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어떤 프로그램의 김미경편이 아닌,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건 토크쇼, ‘김미경쇼의 진행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처럼 꿈을 쫓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나보다. 그녀는 그런사람들을 드림워커라고 부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수용, 변호사출신 ceo 제임스 정, 천재 건축가 문훈 등 각자 자신이 정말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둔 드림워커들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에 강연이 하나의 큰 이슈가 되면서 강연쇼, 토크콘서트 등 다양한 강연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김미경쇼만의 특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김미경이 나온다는 것이다. ‘김미경이 나온다는 것은 그녀가 소개하는 드림워커들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녀의 직설화법으로 청중들이 정말로 궁금해 하는 것을 드림워커들에게서 콕콕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이제 대중들은 그녀의 이름 석자만 듣고도 궁금증을 가지게되었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가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한 작은 시골마을의 욕심많은 꼬마아이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찾아주는 드림워커가 되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힘든일도 많았고, 굴욕적인 일로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에 대한 믿음과 그녀의 꿈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저는 제 딸이 순탄한 삶을 살기 원하지 않아요, 제 딸이 지금의 제 나이가 되었을 때 저처럼 사람들에게 할 얘기가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하고, 또 많은 좌절을 해봐야 해요. 여러 좌절을 극복해나가는 그 과정이 쌓여 지금의 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까 실패나 좌절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왜 이런 고통이 따르냐고 불평할 때가 있다. 초등학생들을 초등학생대로, 3은 고3대로, 20대는 20대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자신의 고충과 불만이 다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미경원장이 말한 것처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그것 또한 자신의 인생을 쌓아가는 한 과정이므로... Ahn


대학생기자 조아라 / 숙명여대 멀티미디어과학과